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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꼽힌 Kkophin Sohn

지역간 문화인프라 불균형 문제에 관심이 많다. 돈과 정비례하지 않는 살기좋은 도시(liveable city)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어 The School of Life, 맹그로브mangrove, JOH, TPZ 등 공간과 문화를 매개로 윤택한 도시 문화를 제안하는 브랜드 전략, 마케터로 일했다. 2022년, 부티크 브랜드 에이전시 ‘하티핸디’를 만들었다.

부티크 브랜드 에이전시 ‘하티핸디’의 창립자이자 브랜드 전략, 마케터. 2022년 종로구 청운동 작업실을 거쳐 2023년 서대문구 홍제천에 동명의 워크룸을 열었다. 2025년 하반기 런던으로 거점을 확대한다. 29CM, 컬리 등 감도 높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의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했다. 궁극적으로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문화 기획, 정치 및 공공 캠페인을 꿈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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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 @kphns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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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2.(Tue)
- 24.10.28.(Mon)

  • 24.10.22.(Tue)

    Basel → Zurich
    Vitra Design Museum → Fondation Beyeler → Kunsthalle Basel → Mitte → Basel SBB(Station)
    어느덧 출장 3주 차, 이렇게 오래 해외에 나와 있는 건 대학생 때 배낭 여행하던 시절 이후 처음이다. 오늘은 바젤을 마저 둘러본 다음 기차를 타고 취리히로 이동하는 일정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에서 짐을 간단히 정리하고 가장 기대했던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으로 향한다. 나라로 따지면 독일에 위치한 미술관인데 바젤 숙소에서 20~30분 트램을 타면 도착한다. 여행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참나”, “치” 이런 이상한 혼잣말을 뱉곤 하는데 국가/국민이라는 개념보다는 그냥 지구에 사는 사람1로 존재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기대를 충족하는 건 물론이고 내내 너무 들떠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물렀다. 이제는 진부하게 들리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나이키 전시에서 특히 반가웠던 발견은 책 <Who’s Afraid of Niketown?: Nike-urbanism, branding and the city of tomorrow>이다. <There is no finish line>은 알고 있었는데, 나이키가 말하는 어바니즘이 뭔지 궁금해서 구매했다. 한국에는 번역서가 아직 없는 듯.
    친구가 추천해 준 Fondation Beyeler에서 마티스 전시를 보고 호숫가에서 멍을 때렸다. 준비 중인 프로젝트들의 마무리 작업이 있어 업무 연락을 주고받긴 하지만 모든 긴장이 이완되는 느낌이 든다. 입장할 때 문장을 통해 티켓팅 유형을 분류하는 게 재밌었다.
    목적지 없이 거리를 쏘다니다가 영화관과 분수 광장에 사람들이 바닥에 앉아서 작업을 하거나 독서를 하는 게 진짜 자유로워 보인다. 사실 나는 말로만 자유, 자유, 외치지 실제로는 어떤 틀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분수는 전형적인 아름다운 물줄기가 아니라 여러 개의 작은 조형물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데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바로 옆이 쿤스트할레 바젤이길래 <SOFT POWER> 전시도 관람했다. 전시와 서점 자체도 좋았는데 입장 시 내 이름과 얼굴을 3D로 스캔하고 몇 가지 도시와 사회에 대한 질문을 한 다음 맨 마지막 전시장에서 내가 전문가로 나와서 인터뷰하는 영상이 한 벽을 꽉 채우게 재생된다. 딥페이크처럼 정교하지 않기도 하고 개인화해서 더 몰입하게 해주는 요소 같아 흥미로웠다.
    해가 지고 바젤 프라이탁 매장 바로 옆 Mitte 라는 공간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신다. 오늘 저녁에 공간 2층에서 UM Politics Talk라는 정기토크 프로그램이 열리는데 마침 시간이 맞았다. 여행을 주제로 한 날이어서 더 캐주얼한 마음으로 참여했는데, 연사의 아래 말이 기억이 남는다.
    “가장 긴 여행은 결국 자신의 다음 발걸음으로 가는 가장 짧은 길, 미지의 땅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는(과연) 취리히로 이동한다.
  • 24.10.23.(Wed)

    Never Stop Reading → MONOCLE → On Lab → Freitag → 취리히 예술대학 → FLINC → 취리히 미술관
    취리히는 문학 축제 기간이라 이곳저곳에서 책 관련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마리나의 전시도 곧 열려서 관련 홍보 포스터가 많이 보인다. 여행하면서 재밌는 것은 파리나 런던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거리에 광고물이 거의 안 보인다는 점이다. 있다고 하더라도 문화, 예술 관련의 소식을 알리는 아름다운 디자인의 포스터다. 유니클로가 프린팅된 트램을 보긴 했지만 이마저도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업무의 일환으로 크고 작은 브랜드 캠페인을 해오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시선에 닿고 무의식 속 선택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일이 사람들의 여가를 침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다르게 말을 건낼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숙소 앞 Never stop reading이라는 서점에서 재밌어 보이는 책을 몇 권 샀다.
    취리히에서는 ON, Freitag, Monocle에 갔는데 세 군데 모두 이 브랜드가 궁금한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든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광고가 아니기 때문에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해서 좋았다, 모노클 컨퍼런스에서 만났던 분 덕분에 본사도 구경하고 더 자세한 설명도 들었다. On Lab에서 진행되는 개더링 프로그램이랑 1층 식당에서 먹은 점심이 맛있었다. 매거진 OFF를 읽으며 먹었다. 12월 1일, 데스커라운지에서 진행하는 워크샵의 창작자분들과 미팅 시간이 되어 구글밋에 접속했다. 메인 타이틀과 프로그램 구성이 확정되었다. 24년의 4분기를 데스커와 함께 하는 덕분에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서 기쁘다. 취리히 예술대학에서 작은 전시를 볼겸 들렀는데 E-flux 창립 편집자이자 큐레이터인 Brian Kuan Wood토크가 있어서 잠시 듣다가 나왔다. 내년 하반기에 하티핸디의 거점을 유럽의 어느 도시로 옮긴다면 내가 굳이 애를 써서 만들거나 찾지 않아도 어제의 UM Politics Talk나 이런 렉쳐에 대한 접근성이 생긴다는 게 제일 욕심난다.
    정작 프라이탁 본사에서 마음에 드는 제품은 발견하지 못했는데 몇 시간 뒤 운명처럼 마음에 드는 가방을 만났다. 프라이탁 창업자가 FLINC라는 자전거 브랜드를 런칭했고 그 매장도 취리히에 있어서 갔는데, 미리 이메일로 이야기 나눴던 Celine과 대화하다가 자전거 박스에 놓인 프라이탁 가방에 꽂혔다. FLINC 직원이 세컨핸드로 구입한 제품이었는데 정가의 반의반 금액에 팔길래 페이팔 송금했다. 이거 완전 세컨-세컨핸드 아닌지. 한국 돌아가면 꼭 자전거를 배우고 FLINC를 사야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현대미술관에서 곧 라이브 퍼포먼스를 하는 Marina의 뒷모습을 봤다.
  • 24.10.24.(Thu)

    취리히대학 도서관 → 르코르뷔지에 파빌리온 → MONOCLE → spheres → 카바레 볼테르 → LOI → 쿤스트할레 취리히
    오늘은 서울에서 동시에 2가지 일이 진행되는 날이라 팔로업하기 위해 취리히대학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하나는 출국 전 급하게 들어온 미디어 회사와 진행한 컨퍼런스, 하얏트 호텔에서 꽤 규모 있게 진행되는데 빠르게 매진되었고 함께 만든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해서도 좋은 평을 받았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되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현장 사진과 주요 내용들을 공유받았다. 저녁에는 Achim을 만드는 윤진 디렉터와 만든 시간관리 워크숍이 진행된다. 이 역시도 오픈하자마자 자리가 꽉 찼다. 하티핸디 객원 멤버 모연 덕분에 일이 착착 돌아가고 있다. 내년을 준비하려면 좋은 동료를 찾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일 것이다.
    점심을 먹고 모노클로 가서 남은 업무를 마저 진행했다. 취리히 오피스에는 Monocle Radio를 녹음하는 곳과 직원들이 일하는 공간이 있다. 주말에 Garage Sale을 한다고 해서 파리 일정을 옮기고 싶었지만 참았다. 결은 다르지만 살기 좋은 도시, 브랜드와 미디어, 영향력 부문에서 롤모델로 삼는 회사 사무실 옆에 앉아서 일하니까 더 능률이 올라갔다. 단순히 외국에서 살아보고싶다라는 마음이 30이라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더 깊게 이야기하고 치열하게 결과를 만들 동료를 찾고 싶다, 자극받으면서 더 효능감 있게 일하고 싶다가 70이다.
    일을 마치고 도시의 주요 커뮤니티 공간인 spheres, cavare voltare를 둘러보고 쿤스트할레 취리히에서 Hauser & Wirth, 윤민 작가 전시, 한스울리히 아카이브 아그네스 바르다 전시를 보고 LOI에서 저녁을 먹었다. 인스타그램으로만 몇 년 전부터 팔로우하던 곳인데 1층에 있어서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 24.10.25.(Fri)

    Zurich → Paris
    Distance → 이봉랑베르 서점 → Paperboy → 튈레르 공원 → 숙소
    아침 일찍 파리행 기차를 탄다. 기차에 콘센트, 와이파이가 모두 있어서 일하기 최적화되어 있고 도착 시간이라는 데드라인이 있으니 더 집중이 잘된다. 내리자마자 러닝 편집숍 Distance, 이봉랑베르 서점을 지나 Paperboy에서 비건 샌드위치를 먹었다. 스포츠 브랜드와 협업했던 프로젝트들을 보고 와보고 싶었던 곳인데 접객이랑 선곡이 좋았다. 낯선 사람한테 받는 호의가 하루 기분에 큰 영향을 미치는구나. 혼자 살고 혼자 일하니까 잊고 있던 감각이다.
    언어를 못 하니까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진다. 배터리가 없으면 불안하다. 다행히 어딜가나 여유롭게 기다려주고 친절하다. 서울에서 나는 남은 쳐다보지도 않고, 에어팟 끼고 말 걸어도 모르는 체하고 발걸음 옮겼던 것 반성했다. 그러지 말아야지,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오늘은 줌으로 출판사 대표님에 자문 미팅을 진행하고, 신규 클라이언트와 어떻게 협업할 수 있을지 제안드리는 미팅을 한다. 혼자 집중해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파트너사와 만나서 이야기하고 생생한 고민을 듣는 게 즐겁다. 함께 고민을 안고 실마리를 찾아내서 근미래를 그리고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꾸준히 지속하고 싶다.
    숙소에서 미팅하고 일하다가 타코 먹고 튈레르 공원에서 러닝하고 잤다.
  • 24.10.26.(Sat)

    방브 벼룩시장 → 쿨레 베르트 산책길 → Fringe → 팔레드도쿄 → Motto Paris → Maryam Nassir Zadeh → Ofr Paris → 루이비통 파운데이션 → Maison de Roche → Partick Seguin → 라파예트, 르봉마르쉐 백화점
    한적한 동네를 찾다가 파리 외곽 방브 지역의 Sonder 라는 숙소에 머물고 있다. 주말에는 큰 규모의 벼룩시장이 열린다고 해서 아침 산책 후 빵과 커피를 먹고 가벼운 마음으로 벼룩시장을 구경했다. 은으로 된 식기와 그림, 빈티지 조명들을 가지고 싶었는데 캐리어에 더 이상 넣을 수가 없어서 참느라 곤욕스러웠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챙겨온 노트북을 숙소에 다시 두고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가보고 싶은 곳을 모두 가봐야지 동선을 짰다. 팔레드도쿄 전시를 예매해 두고 근처 카페에서 일기를 쓴다. 서점, 미술관, 카페 어딜가나 사람이 많다. 복잡하긴 하지만 하티핸디로 서울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일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런던, 파리 같은 대도시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바젤과 로테르담도 정말 좋았는데… 여행으로 자주 가야지.
    골목마다 작은 상점과 빵집, 작은 갤러리들을 구경하느라 4만 보를 걸었다. 마트에서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내일 열리는 블랙 오디세이 공연에 게스트로 초대받았다. 미쳤나 봐 너무 좋아.
  • 24.10.27.(Sun)

    Buddy Buddy → COMET → FAUNA → Mardi → Le plateau → 퐁피두센터 → OBER MAMMA → FOLDEROL → BLK ODSSY
    파리에 출장을 온 Achim/QQAA 대표 진이와 연락이 닿았다. 마침 퐁피두에 가려고 했는데 퐁피두 도서관에서 일할 예정이라고, 식사하며 캐치업하자고 서로 봐둔 공간을 나누는데 취향이 비슷해서 약속 잡기가 수월했다. 비슷한 일, 비슷한 스테이지에 있는 또래 친구가 있어서 진짜 큰 힘이 된다. 재밌고 규모 있는 일을 진행하면서 마음 맞는 동료들과 활발하게 일하고 싶다. 매일 매일 다짐의 연속이라 웃긴데 나에게는 고무적인 환경인 것 같다.
    오늘은 궁금했던 F&B 매장 브랜드들을 체크하기로 했다. 열 군데 정도 갔는데 좋았던 곳은 버디버디, 마르디, 꼬멧, 파우나. 모두 30분 이상씩 머무르며 시간을 보냈다. 출장에서 경험하고 배운 것들이 많은데 어떤 형태로 나눌지 고민이다. Buddy buddy는 피넛 버터를 만들고 피넛 버터를 매개로 여러 디저트와 음료를 파는데 쿠키가 너무 맛있었다, 게다가 B Corp 인증까지 받은 지속 가능한 기업. 매력적인 비주얼의 공간은 정말 많은데, 진짜 좋다고 느끼는 부분 한 끗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어서 발이 아픈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다. Mardi에서 커피를 마시고 근처 Le Plateau에서 전시를 봤더니 퐁피두에 갈 시간이 되었다.
    5시 입장이라 여유가 있었지만 미술관들은 늘 입장 줄이 긴 편이라 서둘렀다. 궁극적으로 도시 브랜딩, 공공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데 네덜란드, 프랑스 등 문화예술이 결합된 도시 재생의 좋은 사례들을 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느낀다. 확실히 아티클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차이가 크다.
    미리 예약해둔 OBER MAMMA에서 디너미팅을 했다. 빅마마그룹이라는 F&B 기획 회사가 만든 식당 중 하나인데 인기 있는 식당들을 여럿 운영하고 있다. 트러플 피자랑 샐러드를 맛있게 나누어 먹고, 두아리파의 뉴스레터 SERVICE95에서 본 아이스크림/와인숍 폴더롤에서 후식을 먹었다. 숙소에 가기 전 블랙 오디세이 공연이 있단 것을 생각해 내서 중간에 내렸다. 해외에서 보는 힙합 공연은 언제나 좋다…. 흥얼거리면서 체크아웃 짐을 싸고 잠에 들었다.
  • 24.10.28.(Mon)

    Paris → London
    DAUNT BOOKS → Midori House → Nanushka → V&A
    그냥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이런저런 기사를 보다가 런던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만 35세까지로 연장되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만 34세, 내년 7월에는 현재 사는 집과 작업실 계약이 종료된다, 물론 연장해도 되지만 이사 가는 것도 옵션이어서 어느 동네로 갈지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기사를 보고 홀린 듯이 비자를 신청했다. 매일 3시간씩 영어 공부를 하며 아이엘츠 점수를 따고, 교수님과 대표님들께 추천서를 받으며 입학 서류 준비도 했다. 한 가지 문제는 내가 런던에 가본 적이 없다는 거다.
    가고 싶은 학교와 함께 일할 클라이언트들은 대략 정해두고 런던행 티켓을 끊었던 것이 이번 출장의 시작이었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런던에 간다. 내년에 어떤 동네에 살지 부동산 뷰잉도 하고 공부를 하게 된다면 만나게 될 교수님과의 티타임도 진행되며 함께 일할 클라이언트와의 미팅도 예정되어 있다. 만약 별로면 서울에서 계속 일하겠지만, 좋다면 여러 위험을 감수하고 거점을 옮기게 된다. 내 인생에서 전환점이 될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느냐 마느냐 결정될 것이다.
    비가 오고 쌀쌀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피곤함이 몰려왔다. 쌀국수를 먹고 짐을 풀고 가벼운 산책에 나선다. 29CM에서만 보던 사브레 매장, 터줏대감 같은 서점 DAUNT BOOKS 지나 미도리 하우스(윙 크리에이티브)에 갔다. 모노클 컨퍼런스에서 Nanushka 세션이 인상 깊었어서 매장과 카페를 겸하는 공간에 가서 이번 컬렉션을 구경하고 커피를 주문했다. 운동을 정기적으로 시작하면서 기능성 중심의 스포츠 브랜드에서 시작해 패션 브랜드들의 매력에 빠지고 있다. 알면 알수록 애정이 커지고 내년에는 홈/리빙이나 스포츠와 접점이 있는 패션 브랜드들과 일해보고 싶다.
    런던은 5시만 되어도 깜깜해진다, V&A에 들렀다가 숙소에 돌아와 IT 스타트업의 마케팅 제안 미팅을 하고 몇 가지 문서를 만들어 보내드린 뒤 10시도 안 되어서 잠들었다.
  • 취리히는 문학 축제 기간이라 이곳저곳에서 책 관련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마리나의 전시도 곧 열려서 관련 홍보 포스터가 많이 보인다. 여행하면서 재밌는 것은 파리나 런던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거리에 광고물이 거의 안 보인다는 점이다. 있다고 하더라도 문화, 예술 관련의 소식을 알리는 아름다운 디자인의 포스터다. 유니클로가 프린팅된 트램을 보긴 했지만 이마저도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업무의 일환으로 크고 작은 브랜드 캠페인을 해오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시선에 닿고 무의식 속 선택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일이 사람들의 여가를 침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다르게 말을 건낼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숙소 앞 Never stop reading이라는 서점에서 재밌어 보이는 책을 몇 권 샀다.
    취리히에서는 ON, Freitag, Monocle에 갔는데 세 군데 모두 이 브랜드가 궁금한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든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광고가 아니기 때문에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해서 좋았다, 모노클 컨퍼런스에서 만났던 분 덕분에 본사도 구경하고 더 자세한 설명도 들었다. On Lab에서 진행되는 개더링 프로그램이랑 1층 식당에서 먹은 점심이 맛있었다. 매거진 OFF를 읽으며 먹었다. 12월 1일, 데스커라운지에서 진행하는 워크샵의 창작자분들과 미팅 시간이 되어 구글밋에 접속했다. 메인 타이틀과 프로그램 구성이 확정되었다. 24년의 4분기를 데스커와 함께 하는 덕분에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어서 기쁘다. 취리히 예술대학에서 작은 전시를 볼겸 들렀는데 E-flux 창립 편집자이자 큐레이터인 Brian Kuan Wood토크가 있어서 잠시 듣다가 나왔다. 내년 하반기에 하티핸디의 거점을 유럽의 어느 도시로 옮긴다면 내가 굳이 애를 써서 만들거나 찾지 않아도 어제의 UM Politics Talk나 이런 렉쳐에 대한 접근성이 생긴다는 게 제일 욕심난다.
    정작 프라이탁 본사에서 마음에 드는 제품은 발견하지 못했는데 몇 시간 뒤 운명처럼 마음에 드는 가방을 만났다. 프라이탁 창업자가 FLINC라는 자전거 브랜드를 런칭했고 그 매장도 취리히에 있어서 갔는데, 미리 이메일로 이야기 나눴던 Celine과 대화하다가 자전거 박스에 놓인 프라이탁 가방에 꽂혔다. FLINC 직원이 세컨핸드로 구입한 제품이었는데 정가의 반의반 금액에 팔길래 페이팔 송금했다. 이거 완전 세컨-세컨핸드 아닌지. (사진) 한국 돌아가면 꼭 자전거를 배우고 FLINC를 사야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현대미술관에서 곧 라이브 퍼포먼스를 하는 Marina의 뒷모습을 봤다.

29CM(29HOME)

DESKER LOUNGE

  • 29CM(29HOME)

    24년 상반기 29CM(29HOME)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전략・실행 파트너

    • Guide to Better Choice(더 나은 선택을 위한 가이드)를 위해 2011년 설립된 29CM는 패션, 라이프스타일, 컬쳐를 넘어 29HOME으로 확장했으며, 이를 알리기 위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일환으로 1월 기획전 〈29 HOME WEEK: HOUSE RULES〉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 페르소나인 ‘라이프세터’가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30인의 인물과 매체 협업을 통해 메시지를 확산해 목표로 삼았던 지표들을 초과 달성했습니다.
    1. 핵심 메시지 수립
      ㅣHouse Rules 나다운 공간을 위한 규칙
    2. 브랜드 콘텐츠 기획
      ㅣ메시지를 담은 브랜드 필름
    3. 모델 섭외 및 제작
      ㅣ요리, 휴식, 작업을 키워드로 메인 인물 선정
    4. 브랜디드 콘텐츠
      ㅣ홈・리빙 고관여 인물 30인 협업
    5. 미디어 파트너십
      ㅣ디지털 채널 믹스를 통한 확산 지원
  • DESKER LOUNGE

    24년 4분기 데스커라운지
    공간·커뮤니티 파트너

    • 2016년 스타트업을 위한 가구로 시작한 DESKER는 단순 사무용 가구를 넘어 ’시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한다‘는 가치를 기반으로 미디어 Differ, 양양 워케이션, 홍대 데스커 라운지 등 주목할만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 일잘러들의 성지로 잘 알려진 ’데스커라운지‘에 홍대라는 지역적 특성을 더해 디자인, 출판, 음악 등 창작자들의 아지트로 공간을 조성하고 연계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1. 하티핸디 위성 오피스
      ㅣ워크룸 공간 기획 및 조성
    2. 브랜드 콘텐츠 제안
      ㅣ매니페스토 & 툴킷
    3. 창작자 선정 및 연계 프로그램
      ㅣ발명, 미디어, 음악, 문학 키워드로 인물 선정
      ㅣ먼슬리 프로그램 기획 및 진행
    4. 브랜디드 콘텐츠
      ㅣ공간 소개 및 창작자 미니인터뷰
      ㅣ프로그램 현장 스케치
    5. 프라이빗 파티 기획 및 진행
      ㅣ창작자, 작업자, 미디어 대상 하티핸디 시무식
      ㅣ웰컴 기프트, 케이터링, 뮤직 프로그램, 라이브드로잉 등
    6. 프라이빗 파티 기획 및 진행
      ㅣ창작자, 작업자, 미디어 대상 하티핸디 시무식
      ㅣ웰컴 기프트, 케이터링, 뮤직 프로그램, 라이브드로잉 등
  • Q. 평소에도 일기를 쓰시나요?

    A. 평소에 일기를 쓰진 않아요. 사실 제 개인적인 일상에는 큰 사건이 별로 없고 대부분 일이 중심이에요. 그래서 일기를 쓴다기보다는 메모를 간단히 해두는 정도예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인스타그램에 회고 차원으로 올리는 포스팅이 그나마 기록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만 일기는 안써요.

    Q.

    그래도 기록을 남겨야 하는 일이 꽤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건 어디에 남기세요?

    A. 음... 저 진짜 기록을 잘 안 해요.

    Q.

    그럼 아이디어 같은 건 그냥 머리속에만 있는건가요?

    A. 아, 막 쓰는 노트가 하나 있긴 하네요. 아니면 기획서나 제안서 쓸 일이 있으면 구글 문서나 스프레드시트에 초안으로 정리하는 정도예요. 그러고 보니 저 진짜 기록을 잘 안 하는 사람 같네요.

  • Q. 일기에서 ‘사실 나는 말로만 자유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어떤 틀 안에서만 움직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쓰셨던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꼽힌님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업무 방식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방식이 지금 일하고 있는 방식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 궁금하더라고요.
    A. 사실 지금 제가 바라던 방식으로 일하고 있긴 해요. 처음 다녔던 회사는 코로나가 심했던 시기라 재택근무를 했는데, 어느 순간 출근해야 하는 때가 왔죠. 당시 저는 서촌에 살았고 회사는 성수동에 있어서 출퇴근에 왕복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예요. 시간도 너무 아깝고, 사람들 많은데 지하철 낑겨 타는 것도 싫더라고요. ‘1년 동안 아웃풋도 잘낸 것 같은데 꼭 회사로 출근을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퇴사할 때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원하는 사람들과, 원하는 타이밍에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왔고, 지금은 그렇게 바라던 대로 살고 있어요.
    그런데도 최근에는 다시 어떤 갈증이 느껴지더라고요.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하고 나니 브랜드와 협업할 때 그 브랜드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회사 중 하나의 옵션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저는 단순히 외주 업체로서 일하기보다 브랜드의 비전을 함께 고민하고, 좀 더 밀착해서 객원 멤버처럼 치열하게 일하고 싶거든요. 물론 그런 방식으로 일한 적도 많았지만, 프로젝트 규모가 커지니까 하티핸디가 그냥 ‘에이전시1’처럼 되어버린 거죠.
    좀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보통 회사들, 특히 한국 회사의 경우 저에게 ‘이번 시즌에 새 상품이 나왔는데, 3개월 동안 마케팅해줘’,‘캠페인 메시지와 비주얼, 홍보 콘텐츠를 만들고 운영해줘’, ‘팝업 행사를 기획해줘’ 같은 요청을 해와요. 저는 단순히 시즌 상품을 홍보하는 게 아니라 긴 호흡을 가지고 회사의 메세지를 유저에게 전달하고 싶은건데, 현실은 3개월로 끝나버리는 단기 프로젝트가 많다보니 아쉽더라고요. 저도 돈 벌어야 하고, 큰 클라이언트와 일해야 포트폴리오가 되니까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 경우가 꽤 많죠. 비딩이나 무료 피치 같은 건 안 하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결국 불안한 마음에 하게 되더라고요.
    다만 이제는 그런 불안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경험이 쌓였고, 처음 회사 나오면서 생각했던 하티핸디의 방향성, 전형적인 광고대행사가 아니라 대안적인 에이전시의 방향을 찾아가고 있어요. 저희 사무실에는 일할 때 지키는 10가지 매니페스토가 있는데, 그걸 읽어보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업무 방식은 이 매니페스토로 어느 정도 갈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가능한 한 클라이언트와 갑을 관계가 아닌 우정과 호혜를 기반으로, 장기적으로 협력하며 일하고 싶어요.
  • Q. 1인 회사로서 프로젝트 마감이나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프로젝트 착수하기 전에 제가 먼저 일정을 안전하게 계획해서 그 안에서 운영하려고 해요. 그리고 사실 저는 잠을 많이 자지 않아요(웃음).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니까 불안하기도 하고, 2년 정도 됐지만 아직 초반이라고 생각해서 평판 같은 걸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좀 더 희생하면서 일하고 있죠. 클라이언트한테 연락 오면 최대한 빠르게 답변을 드리려고 노력하고요. 그런 점에서 클라이언트가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제가 밤을 새면 샜지….
  • Q. 그럼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아무래도 혼자 일하다 보면 체력 관리가 필수일 것 같아요.
    A. 매일 운동하죠. 아침에는 걸어서 체육관에 가고, 거기서 근력 운동을 1시간 정도 해요. 바쁠 땐 어렵지만, 프로젝트 끝나면 되도록 세 끼를 다 요리해서 먹고요.
    Q. 보통 잠은 얼마나 자세요?
    A. 많이 자면 5시간 정도요.
    Q. 헉, 원래 잠을 많이 안 자도 괜찮으신 편인가요?
    A. 아니요, 원래는 그렇지 않았어요. 불안하고 무서워서 그런 것 같아요. 아무도 날 책임져주지 않고, 백업해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Q. 그래서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지시는 거군요. (웃음) 일기를 보니까 정말 많이 걸으셨던데, 평소에는 얼마나 걸으세요?
    A. 이게 최근 6개월 걸음 수예요.
    Q. 저는 여행을 가셔서 많이 걸으신 줄 알았는데, 원래도 많이 걸으시네요? 정말 체력이 좋으신 것 같아요.
    A. 저는 자전거를 못 타서 대부분 도보로 이동하거든요. 그리고 산책을 정말 많이 하는 편이에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두 시간 정도 산책해요.
    Q. 일기에도 자전거 못 타신다고 써있더라고요. 그래서 주요 이동 수단이 궁금했어요. 운전은 하시나요?
    A. 아니요, 면허는 있는데 운전은 못 해요. 미팅할 때는 보통 택시를 타고, 아니면 거의 걸어다녀요. 체력이 좋다기보다는 도파민 때문인 것 같아요.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새로운 걸 보게 되는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기도 하고요. 사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데… 생계형 인싸인 것 같아요. (웃음)
  • Q. 일기에 동료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많더라고요. 어떤 동료와 함께 일하고 싶은지, 혹은 직원을 둘 생각은 없으신지 궁금했어요.
    A. 함께 할 동료를 찾는 게 다음 단계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동료를 커뮤니티의 일환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하티핸디 워크룸을 친구들이랑 같이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이제는 책임감을 같이 나누고, 회사를 성장시킬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그게 직원이든 임원이든 관계없고요. 아무튼 앞으로 채용 계획이 있고, 런던과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고민 중이에요. 출근을 의무화하는 형태는 아닐 것 같고요.
    Q. 그러면 같이 일할 분을 구할 때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보실 생각이세요?
    A. 음... 저는 자주적인 면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시키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회사를 함께 성장시킬 사람을 찾고 싶어요. 역할로 보면 운영적인 측면을 잘 봐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죠. 전 되게 즉흥적이고, 함께 일하는 분에게 호의를 보이고 싶은 마음도 커서 일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 비용을 미리 지급하거나, 단가보다 높게 주거나 하는 일이 많거든요. 그런데 규모가 커지니까 지속 가능성 면에서 지금처럼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줄 수 있는, 살림이나 경영 측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 Q. 이제 유럽 출장기를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영국으로 하티핸디의 거점을 옮기고 싶었던 이유가 궁금한데요. 일기에는 영국의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만 35세까지 연장된다는 기사를 보고 비자를 신청했다고 쓰셨는데, 그게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사실 예전부터 다른 나라에서 거점을 두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A. 맞아요, 무의식적으로 외국에 못 나가본 게 컴플렉스였던 것 같아요. 교환학생이나 워홀 같은 경험이 없었는데, 주변 친구들은 그런 경험을 많이 했으니까 아쉽고 부러운 마음이 컸죠. 그리고 한국에서 정말 같이 일해보고 싶었던 클라이언트와도 작업을 해보니, 자연스럽게 ‘그 다음은 뭐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찰나에 그 기사를 보게된거죠.
    더해서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일, 문화예술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이에요.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여가 시간을 윤택하게 만드는 게 제 목표인데, 한국에 특정 브랜드를 대변해서 일 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들의 문법으로 이야기하게 되더라고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대안적인 에이전시가 되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너무 한국적인 방식으로 일하고, 한국적인 아웃풋을 내고 있던 거죠. 이렇게 계속 가다 보면 제가 지향하는 바와 실제로 하고 있는 일 사이에 괴리가 더 커질 것 같았어요. 한국적인 방식으로 일하기는 쉽지만, 이게 점점 나에게 어떤 제약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기회비용을 감수하고라도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어진 거죠. 사실 물가도 비싸고, 월세, 생활비도 많이 들고, 한국에서 저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저버리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도 제 자신에게 투자한다고 생각하려고요. 아무리 못해도 그동안 가지고 있던 컴플렉스를 달랠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이번에 유럽 출장 가보니까 좋았던 건, 제가 20대 때 경험했던 것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저는 10대 때 화성시에 살았거든요. 그때 화성시는 죄다 논밭이고 아파트도 없고, 당연히 문화 인프라도 전혀 없었어요. 어딜 가도 제가 어느 집 딸인지 다 알고 계시고(웃음). 그러다가 대학교 때문에 스무살 때 처음 서울로 올라온 거예요. 저는 노래라고는 음악 방송에 나오는 것만 듣고, 영화는 박스오피스에 걸려있는 것만 봤는데 서울에서는 영화 끝나고 감독님이랑 대화 나누는 시간이 있고, 좋아하는 래퍼 공연이 끝나면 같이 사진도 찍을 수 있더라고요. 그 때 문화 충격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예술을 통해 나와는 다른 삶을 간접 경험하면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지더라고요.
    이번에 유럽 여행 갔을 때 스무살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아요. 서울에서 지내면서 이제 서울은 내 손바닥 안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유럽에선 제가 모르는 것 투성이고 전시를 가든, 팝업 행사를 가든 서울과 규모 자체가 다르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스무살에 느낀, 성장하기 전에 마주했던 불안하고 벅차는 감정이 올라오니까 유럽에서 살아봐야겠다는 확신이 더 강하게 들더라고요.
    Q. 그럼 유럽으로 가겠다고 확신 하신거군요? 일기가 이제 막 런던에 도착하셨을 때 끝나버려서 그래서 결국 내년에 유럽으로 가겠다고 생각하셨을지, 한국에 남아야겠다고 생각하셨을지 궁금했어요.
    A. 네, 갈까말까 고민했는데 가는게 맞는 것 같아요.
    Q. 왜 많은 도시 중 런던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A. 다른 도시들도 많지만,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하려면 어느 정도 돈이 도는 도시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유럽의 대도시와 미국 중 고민했는데 미국은 주변 국가로 갈 수 있는 곳이 캐나다 정도라면, 런던이나 파리는 다른 도시들로 갈 수 있는 접근성이 크잖아요. 또 저는 너무 커머셜한 것보다는 문화예술을 바탕으로 일하고 싶거든요. 런던은 그런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고, 제가 공공 캠페인에 관심이 많은데 런던에서는 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제가 원하는 좋은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서울에서 문화예술을 경험하려면 다 돈이잖아요. 그런데 영국은 많은 곳들을 무료로 개방하더라고요. 좋은 세미나도 많고. 제가 한국에서 어렵지 않을까, 돈이 안되니까 사람들이 관심 없지 않을까 했던 사업이나 논의들이 영국에서는 이루어지고 있으니까 여기서 많이 배우면 한국에서도 해볼 수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Q. 그럼 1년 정도 있다오시는걸 계시는 건가요?
    A. 사실 그것도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 제 비자로는 2년까지 있을 수 있는데, 만약 학교를 가게 되면 비자가 1년 추가되고 졸업하면 2년으로 늘어나요. 5년을 거주하면 영주권도 신청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일단은 1~2년 정도를 생각하고 있어요.
    Q. 걱정되는 건 없으세요?
    A. 물가가 너무 비싼 게 가장 큰 걱정이에요. 언어는 가기 전에 좀 더 공부할 생각이에요. 사실 얼마나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지보다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Q. 유럽 출장 동안 먹었던 것중 가장 맛있는 음식은 무엇이었나요?
    A. 발음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Doner’라는 튀르키예 음식이 있어요. 케밥처럼 생겼는데 배고플 때마다 자주 먹었어요. 영국뿐만 아니라 어느 도시에 가든 팔더라고요. 제가 많이 걸어다니잖아요, 그래서 들고 먹기도 좋았어요. 아, 그리고 런던에서 먹은 스콘도 정말 맛있었어요. 원래 스콘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 (웃음).
    Q. 보통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A. 주로 채소를 먹어요. 제가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면 고기를 안먹으려고 해요. 건강 때문에 밀가루나 설탕도 안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치만 프랑스 가서는 빵 먹었죠. 절제하다가 먹으니까 더 맛있더라고요. 또 채식 옵션도 디폴트로 있으니까 정말 좋았어요. 한국에서는 사회생활 하다보면 채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잖아요. 근데 유럽에서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한국에 있을 땐 멀게만 느껴졌던 것들이 이미 유럽에서는 기본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 환경이 저와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예를 들어, 베를린에서 유명한 클럽에 갔을 때 휠체어를 탄 사람들도 춤을 추고 있더라고요. 또 암스테르담에 갔을 때 음악 축제 기간이었는데 마트에서도, 빵집에서도 사람들이 춤추고 있는 모습이 너무 인상 깊었어요. 해방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서울에서는 힙하고 핫한 공간들이 대부분 20대 중심인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유럽에서는 모든 연령층이 함께 어울려 즐기더라고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나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문화, 그런 게 당연한 환경을요. 이런 경험들을 보고 느끼지 못했다면, ‘원래 이런 거니까~’ 하고 넘겼을 수도 있겠지만, 유럽에서 직접 보고 즐기고 나면 한국에 돌아와서 제가 쓰는 기획서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더 설득력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제가 보고 온 생생한 사례를 레퍼런스로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 Q. 하티핸디의 방향성에 대해 정리하자면 뭐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A. 세계를 무대로 하고 싶어요. 서점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하루에 500명이 오면 많이 오는 서점이었거든요. 그때 답답하다고 느꼈던 건, 제가 아무리 잘해도 그 500명한테만 메시지가 닿는다는 점이었어요. 강연을 기획해서 1분 만에 매진이 돼도 결국 80명만 들을 수 있다는 점도요.
    그러다 대기업에서 일했을 때는 1,000만 명에게 푸시 메시지를 보내는 일이 있었는데, 그게 정말 짜릿하더라고요.. 그래서 공공 캠페인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예를 들어, 대선 후보의 동선을 짜거나 현수막 카피를 쓴다면 전국의 사람들이 그 메시지를 볼 수 있잖아요.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브랜드 팝업 행사를 하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고…. 그래서 저는 서울이라는 베이스를 넘어 경계를 더 크게 확장하고 싶어요. 암스테르담에 기반을 두고 서울에서 활동하는 해외 디자이너들도 있잖아요. 그런데 왜 서울의 부티크 에이전시는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곳이 없지? 싶더라고요. 서울의 브랜드를 해외에 알리고, 해외 브랜드가 서울에 오고 싶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물론 지금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저는 그걸 더 재밌게, 공식적으로 만들어 보고 싶어요. 프리랜서가 점점 많아지고 저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도 늘어날 텐데, 서울에서만 파이를 두고 싸우는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저만의 방식으로 도전해 보고 싶어요.
  • Q.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혼자 일하시고 혼자 사시는데 그럴 때 느끼는 외로움이 있으신가요?
    A. 사실 전 외로움을 잘 못느껴요. 복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적인 시기라고 생각해서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크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의지도 높은 것 같아요. 그래서 아침 5시에 일어나도 괜찮고, 하루에 4만 보를 걸어도 힘들지가 않은거 아닐까…. 이게 평생 이렇게 지속되진 않을 것 같거든요. 지금이 일하기 제일 좋은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외로움을 느끼기보다는 ‘이 시기에 어떻게 무언가 제대로 성취해볼까?’라는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돼요.
    아, 제가 외로움을 잘 못느끼는 거랑 관련해서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제 첫 회사가 ‘The School of Life’라는 글로벌 싱크탱크인데요. ‘Magazine B’의 조수용 대표님, ‘최인아 책방’의 최인아 부사장님이 선생님으로 계셨어요. 전 어린 나이에 이 분들의 지혜를 가까이서 보고, 지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업무 환경에 있었던 거죠. 일은 재밌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그래서 1년 정도 다니다가 대표님께 퇴사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처음엔 경력을 좀 더 쌓으라며 말리셨어요. 그러다 ‘꼽힌 씨 보내줄게’라고 말씀하신 날이 있었어요. 제가 왜 그런 결정을 하셨냐고 여쭤보니, 대표님이 제 별자리를 봤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게 벌써 10년 전 이야기인데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대표님 말씀으로는, 제가 태어난 날의 별자리를 입력해서 그 날의 별자리를 봤는데 굉장히 특이했대요. 보통은 안쪽과 바깥쪽에 골고루 별이 분포하는데, 저는 별이 밖에만 있고 안쪽에는 하나도 없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더니, 스스로의 내면에 관심이 없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만 관심이 많다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다른 사람이랑 비교해보면 남들보다는 저 자신이나 내면 세계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저는 거울도 잘 안 봐요. 명상하라고 하면 졸고요(웃음). 대신 남들보다 사회 구조나 시스템에 더 관심이 많죠.
    그렇지만 또 모르죠, 한국에서는 괜찮았지만, 해외로 가면 어떨지….
  •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일주일동안 일기 쓴 소감이 어떠셨나요?
    A. 일기는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 쓰는 것 같아요(웃음). 처음엔 제가 쓰는 글이 정말 티끌같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치가 모이니까 어느정도 맥락이 생기더라고요. 제가 평소에 기록을 안한다고 했잖아요. 근데 이번 기회를 통해서 순간을 붙잡고 정리하니까 좋았어요.
    한번에 여러가지 일이 진행되다 보니, 제가 이걸 의식적으로 기록하지 않으면 정말 모든 게 그냥 지나가버려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는 속도보다 인생이 더 빠른 느낌이랄까요. 근데 하루 단위로 시간을 정리해보니 사소한 일도 맥락이 보이더라고요. 앞으로도 종종 이런 식으로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저는 써주신 내용이 어떤 면에서는 꼽힌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해외에서의 어떤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캐치할 수 있더라고요. 이런 부분들이 누군가에게는 꽤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나중에 런던에 가시면 가끔 일기 써서 공유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웃음).